[Book] 손창섭/비 오는 날/문학과 지성사/비 오는 날 독후감/손창섭 소설

손창섭, 「비 오는 날」 ★★★★★

송병수의 「쇼리 킴」과 마찬가지로 「비오는 날」은 전쟁으로 인한 소시민의 암담한 생활상을 보여줍니다. 「쇼리 킴」이 매춘과 살인, 미군 부대라는 전쟁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곳에서 일어난 일이라면, 「비오는 날」은 제목처럼 ‘비’라는 소재로 전쟁직후 피난민들의 일상에서 표출되는 무기력과 우울함을 드러냅니다.

 

결과적으로 상황은 나빠졌지만 처음부터 끝까지는 비는 계속 내립니다. 전반적으로 우울한 이 소설의 분위기는 40일이나 계속 되는 장마로 인해 형성 되었어요. 장마라는 것이 ‘내일이면 그치겠지’라는 막연한 기대감을 가지게 하죠? 동욱도 이 전쟁으로 인한 피폐한 삶이 나아질 거라는 희망과 종교인이 될 것이라는 꿈으로 살아가지만 현실은 비가 새는 집이죠.

 

비 오는 날인데다가 창문까지 거적대기로 가려서 방 안은 굴속같이 침침했다. (중략) 한편 천장에서는 쉴 사이 없이 빗물이 떨어졌다. 빗물이 떨어지는 자리에 바께쓰가 놓여 있었다. 촐랑 쪼르륵 촐랑, 빗물은 이와 같은 연속적인 음향을 남기며 바께쓰 안에 떨어지는 것이다. 무덤 속 같은 이 방 안의 어둠을 조금이라도 구해주는 것은 그래도 빗물 소리뿐이었다. 그러나 그 빗물 소리마저 바께쓰에 차츰 물이 늘어갈수록 우울한 음향으로 변해가는 것이었다.

 

동옥과 동욱이 거주하는 집을 원구는 무덤으로 비유합니다. 40일이나 지속되는 장마에도 그들은 오직 바께쓰에 유지하여 천장을 수리하지 않아요. 신체적으로 불편한 동옥은 무기력함에 빠져있지만 동욱은 신경질적으로 욕설을 내뱉으며 동옥을 대해요. 목사가 되겠다는 다짐과 거리가 먼 행동들을 일삼죠. 동옥이 신체적으로 불구라면 동욱은 전쟁으로 인해 정신적으로 피폐해진 것입니다. 저는 이를 정신적 불구라고 생각해요. 이런 동옥과 동욱이 사는 집에는 오직 우울함과 곰팡이들이 서려있어요. 

 

동욱 역시 동옥에 대한 연민이 있지만 생계를 유지하던 초상화 일이 줄자 1.4 후퇴 때 동옥을 데리고 온 것을 후회한다는 말을 해요. 원구는 동옥을 만나기 전 동구에게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서인지 기대하는 마음으로 동옥을 찾아요. 하지만 그녀는 냉소적인 태도로 그를 맞이하죠. 원구는 실망했지만 그런 냉소가 동욱의 폭언과 그녀의 콤플렉스인 다리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불구인 신체와 같이 불구적인 성격으로 대해주는 동옥의 태도가 결코 대견할 리 없으면서도, 어느 얄궂은 힘에 조종당하듯이 원구는 또다시 찾아가지 아니할 수 없는 것이었다. 침침한 방 안에 빗물 떨어지는 소리가 듣고 싶어서일까? 동옥의 가늘고 짧은 한쪽 다리가 지니고 있는 슬픔에 중독된 탓일까? 이도 저도 아니면 찾아갈 적마다 차츰 정상적인 데로 돌아오는 동옥의 태도에 색다른 매력을 발견한 탓일까?

 

우연히 동옥의 불구인 다리를 보고 그 뒤로 계속 찾아가는 원구는 예전 동욱이 말했던 혼인 문제에 대해 생각해보지만 쉽사리 결정을 내리지 못해요. 그러던 찰나 동옥은 노파에게 사기를 당하고 동욱과 동옥의 사이는 급격하게 틀어집니다. 원구는 그 사이에서 동옥을 위로하는 일 밖에 없어요. 그의 마음까지 옮겨든 곰팡이는 결말 부분에서 더 부각 됩니다.

 

얼굴이 반반하고서야 어디 몸을 판들 굶어죽기야 하겠느냐는 말에, 이상하게 원구는 정신이 펄쩍 들어 이놈 네가 동옥을 팔아먹었구나하고 대들 듯 한 격분을 마음속 한구석에 의식하면서도, 천근의 무게로 내리누르는 듯 한 육체의 중량을 감당할 수 없어 그는 말없이 발길을 돌이켰다.

 

이 소설은 무기력한 인물들과 비가 소설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형성하는데, 누구하나 할 것 없이 모두 비와 같이 우중충하며 곰팡이가 서려있어요. 햇볕 좋은 날은 끝내 없었죠. 전쟁이 남기고 간 참혹한 현실 속에서 이들은 운명은 변한 것이 없었어요. 원구는 <구약 성경>에 나오는 대홍수처럼 그들에게 직접적인 도움을 주지 못한 자신만 남고 동욱과 동옥은 빗물에 휩쓸려 내려간 것이죠. 동욱은 종교인을 꿈꿨지만 실상은 전쟁과 직접적으로 관련 되어있는, 적을 죽여야 자신이 사는 군대로 떠난 것은 아닐까요. 동옥 역시 노파를 믿으며 돈을 빌려주었지만 사기를 당하고 동욱마저 자신을 버리자 집을 떠나버렸죠. 원구는 동옥에게 연민을 느낄 뿐 직접적으로 도움을 주지 못해요. 그래서 원구는 새 집주인의 말에 말없이 발걸음을 돌릴 수밖에 없었을 것이죠. 자신역시 동옥의 외모에 끌려 마음이 갔던 것은 아닐까, 자신과 새 집주인은 별반 다른 것이 없다고 느껴서 그는 그렇게 가버린 것입니다.

 

 「비오는 날」은 전쟁이 한국문학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보여줍니다. 소설 속 인물들이 전쟁과 직접적인 관련은 없지만 간접적으로 관련 된 직업을 가지고 냉소적인 태도를 보입니다. 전쟁이라는 거대한 사건 속에서 인물들은 현실에 각자의 방식으로 적응했지만 정신은 핍박해졌어요. 이것을 작가들은 해결하거나 극복하려는 노력보다는 염세적인 태도로 결말을 마무리하며 소설은 끝납니다. 오히려 이런 결말이 더욱 여운을 남기는 것일지도 모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