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이창동/녹천에는 똥이 많다/문학과지성사/녹천에는 똥이 많다 독후감/고전문학

이창동, 「녹천에는 똥이 많다」 ★★★★★

인간이 똥을 부끄러워하는 이유는 똥을 통해 우리의 가장 은밀한 부분이 노출되기 때문이다. 동물에게 똥이 문제가 되지 않는 이유는 그들에게는 내면이 없기 때문이다.

- 슬라보예 지젝

 

인간이 똥을 부끄러워하는 이유를 지젝은 우리의 가장 은밀한 부분이 노출되기 때문이라 하죠. 이 소설은 준식의 은밀한 부분을 파헤치며 전개해나가요. 이러한 전개방식이 지루하지 않고, 흥미롭게 다가왔습니다. 저는 준식에 초점을 맞추어 작품을 감상했어요. 준식은 소시민의 대표적인 인물로 설정되어있는데요. 아내와 결혼한 뒤 비가 새는 단칸방을 전전하며 끝내 23평 아파트에 살게 됩니다. 23평 아파트에 입주하자 아내는 오디오와 수족관에 집착을 하며 남들과 같이 안락한 생활을 원해요. 수족관은 아내의 열망을 상징합니다. 이와 같은 맥락으로 준식은 오래전부터 현실에 안주하여 왔으며 순종적인 인물로 보이는데요. 하지만 이상과 꿈 없이 이루어온 현실, 당장 일거리가 잘리더라도, 거주 할 곳이 없어지더라도 현실에 안주하며 살아왔던 날들이 민우의 등장으로 깨집니다. 

 

유년시절부터 준식과 민우는 반대였습니다. 준식의 과거회상에는 어머니가 빠지지 않고 등장하죠. 이 어머니와 연관된 사건에 민우와 준식은 확연하게 대비됩니다. 한 가지 일화를 예로 들면 버스 요금을 적게 내기 위해 어머니가 민우와 준식의 나이를 속였습니다. 그 상황에서 준식은 조용히 있었지만 민우는 자신의 나이를 말했어요. 이는 단편적인 사건이지만 그 성격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죠. 민우는 항상 올바르지 못한 것에 올바르지 못하다고 말했고 성인이 되어서는 대모에 참여하고 있어요. 민우는 똥통으로 들어가더라도 자신의 이상에 다가서는 것이라고 해석됩니다. 그런 민우를 바라보는 준식의 열등감은 자신의 은밀한 부분을 노출시키는 것이죠. 자신의 꿈도 이상도 없는 현실을 끝내 인정합니다. 준식은 아내까지 자신을 외면하자 감정이 격해져 민우를 찾던 형사들에게 연락을 해요. 하지만 민우가 사람답게 살아가고 있음을 깨닫고 자책합니다. 형사와 마주하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도망치고 결국에는 똥에 주저앉아요. 이는 똥이 널린 녹천 위로 세워진 아파트처럼 그에 만족하며 살아가던 자신의 모습과 같아요. 이상을 좇지도 똥통으로 들어가지도 못하는 자신의 삶에 목 놓아 울고 맙니다. 이처럼 준식의 캐릭터가 매우 인상적입니다. 소설을 읽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준식에게 몰입하며 그 허무감 역시 독자에게 전달되어요. 녹천에는 똥이 많다. 읽는 독자에게 똥은 어떻게 다가왔을까. 저는 그 은밀한 부분이 노출 될까 두려워하는 제 자신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현실과 이상의 괴리와 그를 자각하는 인물을 재밌게 풀어낸 소설로, 많은 분들이 읽었으면 좋겠어요.